우유니 기차무덤이 있는 이유 , 남미 태평양 전쟁 이야기 (남미 3국의 관계/ 페루 볼리비아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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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더 재밌는 여행 상식/우유니에는 왜 기차 무덤이 있을까? 태평양 전쟁 (칠레 페루 볼리비아)

우유니 기차무덤이 있는 이유 , 남미 태평양 전쟁 이야기 (남미 3국의 관계/ 페루 볼리비아 칠레)

남미청년 nammitv 2020. 2. 1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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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에 왜 기차무덤이?

볼리비아와 칠레 페루는
왜 사이가 안좋지?

왜 볼리비아는 내륙국가가 되었을까?

이걸 알아보기위해 조금 먼 과거로 돌아가야합니다.

때는 스페인의 식민지 국가였던 남미의 많은 나라

일제히 독립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원래는 초록색 빗금이 볼리비아 지역이었고 그 위로 페루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나라들이 붙었다 찢어지며 국경 분쟁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때에 건조한 사막기후와 황량한 Atacama지역 당시에 큰 관심이 없는 지역이었고 분명한 Bolivia의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구리 초석 구아노등 대량의 지하자원이 매장 되어있는것이 알려지면서 볼리비아는 뒤늦게 지역 개발에 착수하지만 이미 그곳은 수 많은 칠레인들과 회사들이 있었고 볼리비아는 그제서야 오랫동안 미정이었던 국경선 확정문제를 회담을 통해 정하게됩니다.

명목상 볼리비아 영토였지만 실제 거주인들은 거의 칠레 사람들 이었고 이미 지하자원 개발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볼리비아는 많은 자원을 혼자 개발할 여력이 없어 칠레와 함께 외국 기업의 원조를 얻어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광산 회사들의 실제 소유주는 대부분 칠레사람이었지만 볼리비아영토이기 때문에

세금양국 공통 1/2로 하고 더불어 1874년 칠레인과 기업들에게 향후 25년간 무과세 혜택

부과해주며 개발을 장려했습니다.

그런데 2년뒤 문제가 발생합니다.

볼리비아에서 군사 구테타가 일어나게 되고 나라는 급격히 궁핍해졌으며 국민들의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곳은 볼리비아 땅인데
왜 우리가 세금을 더 얻지못하고 있느냐.." 


더불어 볼리비아는 해안 지방의 경제권을 장악하고있는 칠레를 심히 우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볼리비아는 칠레 회사에
초석 수출 과세를 강화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칠레 정부는 1874년 양국간 맺은 조약을 내세우며 이는 명백한 조약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으며 세금을 인상할 경우에는 1866년의 양국간의 국경선 합의는 완전히 무효로 할것이며 전쟁을 감수하라고 볼리비아 측에 강하게 이야기하기 합니다.

하지만 볼리비아는 전쟁을 할 국력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에도 강력하게 맞대응을 하게되죠.

특히 Antofagasta 지역에 위치한 칠레 철도회사는 인상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겠다 보이콧 선언을 하게되고 볼리비아 정부는 이들의 재산을 압류조치할것이며 이를 경매에 넘기겠다고 발표하고 갈등은 심화됩니다.

칠레는 표면적으로는 여러 회담을 개최하고 문제 해결에 힘쓰며 유화책을 펼치지만 뒤로는 군함배치 군력 배치등 무력시위를 함께 하게되고 볼리비아 역시 압류조치로 강경대응을 하게됩니다.

이 당시 페루와 볼리비아는 칠레 몰래 비밀 군사 동맹을 맺게되는데 이를 칠레가 발견하게되고 압류된 재산의 경매일인 1879년 2월 14일 칠레군이 볼리비아를 선제 공격해서 antofagasta주를 강점하면서 자원을 둘러싼 남미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게됩니다.

1879년 칠레는 유럽 및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볼리비아의 영토 Litoral을 점령하고 볼리비아 군은 안데스 산맥 너머 본토로 쫓겨나면서 사실상 전열에서 이탈하게되었고 페루가 볼리비아를 대신하여 칠레와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 당시 볼리비아는 반대쪽에서 브라질에게도 야금야금 영토를 뺏기고있었습니다)

칠레군은 Antofagasta, arica지역까지 북진하게되고 1880년 Miraflores전투에서 크게 대승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은 완전히 칠레에게 넘어오게됩니다.

이 기세를 몰아 페루의 수도인 Lima까지 북진하게 되고 함락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약 4년간 지속된 게릴라 전투는 칠레와 페루가 1884년 강화조약Treaty of ancon을 맺으며 끝이나게 되었고 이 조약은 승리국 칠레에게 유리한 조항들이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페루의 영토였던 Arica를 포함한 Tarapaca 지역을 병합해서 칠레가 차지하였으며 볼리비아의 영토였던 Antofagasta와 Calama를 포함한 광대한 사막지역 Atacama를 칠레가 가져가게되었습니다.

이후 칠레는 1928년 페루에게 Tacna지방을 돌려주면서 Tarapaca와 arica지역의 영유권을 페루에게 인정받았지만 볼리비아와는 아직도 Antofagasta주의 영유권 분쟁을 계속 하고있습니다.

볼리비아 측의 입장은 함께 자원을 개발하던 당시 칠레 군사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이 Antofagasta영토는 우리가 차지해야한다는 문서를 발견했다고합니다.

처음부터 너희는 우리에게 안토파가스타를 빼았을 생각이었다 라는 이야기죠​


이렇게 볼리비아는 바다와 맞닿은 곳 없는 내륙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유니에 기차무덤이 있는 이유원래 Uyuni에서 antofagasta까지 이어져있던 기찻길이 태평양 전쟁으로 소실된 영토에 의해 운행이 정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볼리비아의 잃어버린 아픈 전쟁의 흔적입니다.

볼리비아 인들은 현재 Tititaca호수의 사용권을 내세우며 칠레에 Lapaz에서 Arica까지의 통행을 원하고 있지만 페루가 이를 견제하여 성사되지 않고있습니다.


칠레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를 나오는동안 놀리때 쓰는 단어가 볼리비아인 페루인 등이 되는걸 들으면서 3국가의 관계가 좋지않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사가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한국 블로그를 찾아보니 기차가 없어서 이게 관광지가 되었다 치우기 돈이 없다 이런 말들이 있길래 학술자료와 남미 대학 논문등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순히 우유니 관광지에 대해 알아보려다 태평양전쟁까지 와버렸는데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던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남미 역사 이야기도 들려드리도록하겠습니다.


이어서 우유니 완벽 총정리 + 꿀팁 + 할인 방법은 아래 남겨둘게요

https://nammitv.tistory.com/m/10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 & 경비, 숙소 고산병 총정리 (+팁&추천&맛집 추가 할인 방법)

얼마전 남미청년이 우유니(UYUNI)에 다녀왔습니다. 최고의 가성비와 최고의 루트를 소개 시켜 드려야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관광을 다녀온 저로써는 가장 편한 숙소 유명 가이드와 함께 다녀왔음을 밝힙니다..

nammitv.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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